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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향해 탐구하고 도전한 국내 위인들

샘플 바다를 향해 탐구하고 도전한 국내 위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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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정 상세표_ 신청기간, 강사명,강사소속,교육시간으로 이루어짐
신청기간 상시모집
강사명 최태성
강사소속 강사
교육시간 11분 17초
큰별쌤 최태성이 알려주는 바다를 향해 도전과 탐구를 멈추지 않은 위인들!

한반도를 동아시아 무역·경쟁의 중심지로 만들 만큼
뛰어난 능력으로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장보고!

뛰어난 업적을 낸 위인이지만
골품제도가 있던 통일신라 시기 태어난 그는, 
제대로 된 이름조차 가지지 못했었다는데...

하지만, 바다를 향해 도전하며 조금씩 성장했다는 장보고.
우리가 알고 있는 해상왕 장보고가 탄생하기까지
그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또, 그가 바다에 던진 도전장을 통해 남겨진 것들은 무엇일까?

장보고가 바다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면,
정약전은 목숨이 위태로운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바다를 탐구했다. 

절망과 죽음의 땅 흑산도에서 해양생물을 기록하며,
국내 최초 수산학 관련 서적 <자산어보>를 집필하고 완성한 정약전.
그의 피,땀,눈물 그리고 희망이 담긴 <자산어보>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한국사 길잡이 큰별쌤 최태성의 귀에 쏙!쏙! 들어오는 강의로 함께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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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보이는 이야기] 안녕하세요 한국사 길잡이 큰별쌤 최태성입니다 자 오늘은요 바다를 향한 도전으로 한반도를 동아시아무역과 경제의 중심지로 만든 장보고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최태성 한국사 강사,작가 現)별별한국사 연구소장 現)국사편찬위원회 자문위원 現) 대광고등학교 역사 교사] [바다를 향해 탐구하고 도전한 국내 위인들 바다를 향한 도전, 장보고] 자 여러분 해상왕,바다의 신 하면 떠오르는 인물 누구인가요? 그렇죠. 바로, 장보고 장보고는 이 미천한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요 고대 중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 역사서에 모두 이름을 올린 유일한 사람입니다 와 이거 어떻게 장보고는 자신의 친분을 극복하고 해상왕이라 불리면서 한중일 역사서 이름을 올렸을까요 장보고는 통일 신라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통일신라는요 골품제 사회였죠 골품제는요 왕족인 성골과 진골 그리고 그 아래 6두품에서 1두품까지 여덟 개의 신분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골품제는 정치적인 출세,집의 크기 의복의 색깔까지 규정짓는 아주 엄격한 신분제였죠 자 6두품은 왕족 다음으로 높은 신분이었지만 올라갈 수 있는 관직의 한계가 있었습니다 지배층이었지만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어느 선 이상 승진할 수가 없었던 겁니다 자 이런 상황이니까 평민들의 삶은 어땠겠습니까? 그 평민들 중 한 명이 장보고였습니다 자 그래서요 한·중·일 삼국의 역사서에 모두 등장할 정도로 이름을 떨쳤음에도 불구하고 출생과 부모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삼국유사의 출신이 미천했다 뭐 이 정도의 기록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완도 근처에서 태어난 평민이었을 걸로 추정될 뿐입니다 심지어 장보고는요 이름조차 없었습니다 평민들은 성도 없고 이름도 정식으로 짓지 않잖아요 그냥 어린 시절부터 활을 좀 잘 쏜다고 이제 활보 이렇게 불렸을 뿐입니다 좀 더 자란 후에는 그 활보를 이제 한자로 바꿔 가지고 궁복 이라는 이름을 썼을 뿐입니다 자 그런데 여러분들 이 시기에 평민들은 절대로 꿈을 가져서는 안 됐습니다 왜요? 이유는요 그 시대의 신분은 운명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뭐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럼 농사를 지어야 됐고요 바닷가에서 태어났으면 그럼 고기 잡으면 살아야 해요 그런데 이 미천한 장보고는 그만 장수,장군의 꿈을 갖게 됩니다 골품제 사회였던 신라에서는 절대 이룰 수 없는 불가능한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장보고는 그 꿈을 반드시 이루고 싶었습니다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푸른 바다였습니다 장보고는 기회를 찾아 바다를 건너 중국 당나라로 갑니다 당시 당나라는 이 대제국으로 불리는 나라였는데요 사방으로 이 땅을 넓다 보니까 여기저기서 반란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당나라는 이걸 막기 위해서 이민족 용병을 고용해서 진압하려고 했죠 당나라로 건너간 장보고도 이 용병 모집 광고를 보고 외인부대에 들어갑니다 월급 받은 군인이 된 거죠 장보고란 이름도 이때 만든 겁니다 월급 받으려면 이름을 등록해야 되니까 이름이 필요했겠죠 군 생활에 잘 맞았는지 아 장보고 승승장구합니다 아우 게다가 활도 잘 쏟았습니까 그죠 아 중국 역사서에 그 활약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화를 쏘고 창을 휘두르며 싸우는 장보고의 모습을 마치 영웅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잘한다 잘 보고 연이어 큰 공을 세운 장보고는 무령군 소장이라는 그 자리까지 올라갑니다 가진 것 하나 없이 낯선 땅이 와서 외국인 용병으로 시작해서 장교까지 된 거니까 우와 엄청나게 성공한 거죠 마치 아메리칸 드림의 버금가는 당나라 드림을 이룬 셈입니다 자 그런데요 반란군이 다 진압됐어요 자 이러면 장보고의 일감이 떨어지는 거 아닐까요? 게다가 이게 외국인이잖아요 그러니까 언제 또 해고될지 모르는 그런 위기감이 분명히 있었을 겁니다 고민하던 장보고는 또 어린 시절에 그랬듯이 푸른 바다를 바라봅니다 바다를 향해 가는 무역선을 발견한 장보고는요 그렇다 이거다 해상무역에 뛰어들기로 결심합니다 장보고는 바닷가 출신입니다 누구보다 바다에 대한 이해가 깊습니다 아 그리고요 당나라에 오래 살다 보니까 현지 사정 빠삭합니다 인맥도 많이 쌓았습니다 장보고는 어디에 가야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는지 어느 곳에서 누구와 교역하고, 어디에 팔아야 되는지 그래야 어디서 많은 이윤이 남는지 다 알아요 자 당시의 중국의 동해안 지역에는요 많은 신라인들이 모여 살고 있었습니다 신라방 이라고 해가지고 코리아타운처럼이 신라인들 그 집단 거주 지역이 있었는데요 그들 중에서는요 연안 운송업과 상업에 종사하는 자들이 굉장히 많이 있었습니다 아라비아,페르시아 상인과 교역하는 그런 사람도 있었죠 이뿐만 아니었습니다 당 신라 일본을 오가면서 국제무역에 종사하던 사람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신라 사람들은 신라원이라는 사찰을 통해서 이 정보를 나누고 친분을 쌓고 있었죠 장보고는 바로 이 네트워크를 활용해야겠다 이렇게 판단합니다 자 그러면서 산둥반도의 적산에 법화원이라는 아주 큰 절을 세웁니다 자연히 많은 사람이 이전에 드나들게 되겠죠 예불을 드릴 때면요 한 2~300명이 좋게 모였고요 신라어로 진행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와 신라인들 대단했네요 바로 이 법화원을 통해서 정보를 수집한 장보고 드디어 바다의 무역선을 띄웁니다 결과는? 우와 야 이거 대박이다 어마어마한 돈을 법니다 정말 상상을 초월한 돈을 봅니다 중국에서도 이름이 날릴 정도로 재산이 많았다고 하니까 거의 뭐 중국에서는 이 당시 장보고를 거의 재벌급으로 보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요 장보고를 아예 재물의 신으로 섬길 정도였습니다 군인으로서 능력도 입증되었고 장사를 통해서 재료까지 얻은 이 장보고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그런 사람이 되었죠 자 이 벌어놓은 돈으로 여생을 정말 편안하게 살면 됩니다 뭐가 부럽습니까? 그렇죠? 그런데 이 장보고의 시선은 늘 그랬듯이 다시 푸른 바다를 향합니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만큼 정말 큰 성공을 거두고 바다를 바라보니까 어 이제는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해적들에게 끌려가 노예로 팔리는 신라 사람들이 보였던 것입니다 장보고는 이때 결심합니다 해적을 소탕해서 이 바다의 질서를 내가 장악하겠다 라는 그런 새로운 꿈을 꾸게 됩니다 자 이제 드디어 신라로 돌아갑니다 신라로 돌아온 장보고는 경주 서라벌로 가서 신라의 왕 흥덕왕을 만납니다 우와 왕을 만났다 누가? 장보고가! 대박! 바닷가 마을에 살았던 그 흙수저 중에 흙수저가 해외에서 출세해서 정말 금의환양해서 왕을 만난 거예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거예요 와 이건 정말 한 편의 드라마 아닙니까 드라마 자 이제 장보고는 흥덕왕에게 이렇게 제안합니다 저에게는 경제력도 있고 군사력도 있습니다 저에게 권한을 주신다면 바다에 해적들을 소탕해 보이겠습니다 듬직하다 흥덕왕은 듣자마자 일을 허락합니다 장보고는 이러면서 완도 앞바다에 청해진을 건설합니다 그전까지만만 해도 이 해적들이 들쑥날쑥 난리법석이었거든요 그런데요 이 청해진이 세워진 이후로는 해적들이 난동을 일으켰다는 기록이 거의 없습니다 장보고는 그야말로 바다를 장악한 겁니다 강력한 군사력이 있었고요 무역업으로 돈도 끊임없이 벌었습니다 청해진 일대는 거의 장보고가 다스리는 왕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바다의 신 장보고의 탄생이었습니다 대항해시대 영국의 탐험가 월터 롤리는요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바로 이 시대 바다를 지배한 자가 바다의 신 장보고였습니다 특히 이 청해진을 중심으로 한 중국과 일본 이슬람 세력과의 무역은요 한반도 역사상 전례 없는 해상무역 활동이었습니다 그 결과 정말 세계 최고라는 타이틀이 붙어도 어색하지 않을 무역왕이 된 것입니다 [바다를 향해 탐구하고 도전한 국내 위인들 -바다를 향한 도전 장보고-] [골품제를 시행하던 통일신라 시대 탄생 장군의 꿈을 꾸며 당나라로 건나감(20대 초반)] [당나라 무령군 소장으로 진급(819년) 적산 법화원 건립(823년)] [청해진 건립으로 해적소탕(828년)] 모두가 자신의 신분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던 그런 시대였지만 장보고는 달랐습니다 어려서는 타고난 한계를 뛰어넘고자 바다를 건넜고 나이가 들어서는 바다를 오고 가는 무역업을 통해 단단한 신분제 사회의 벽을 무너뜨리고자 했습니다 물론 장보고는 왕위 쟁탈전에 휩쓸려서 생을 마감하긴 했지만 바다 너머를 상상하고 그것을 건너고자 했던 그의 도전정신은 우리에게 정말 커다란 용기를 줍니다 자 오늘 이렇게 바다에 대한 도전으로 그리고 그에 대한 성공으로 이 장보고에 대해 한번 알아봤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바다에 대한 탐구 이 탐구로 우리나라 최초 수산학 관계서적인 자산어보를 집필한 정약전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지금까지 한국사 길잡이 큰별쌤 최태성이었습니다 자 다음 시간에도 우리 만나요[바다가 보이는 이야기] 안녕하세요 한국사 길잡이 큰별쌤 최태성입니다 자 오늘은요 바다를 향한 도전으로 한반도를 동아시아무역과 경제의 중심지로 만든 장보고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최태성 한국사 강사,작가 現)별별한국사 연구소장 現)국사편찬위원회 자문위원 現) 대광고등학교 역사 교사] [바다를 향해 탐구하고 도전한 국내 위인들 바다를 향한 도전, 장보고] 자 여러분 해상왕,바다의 신 하면 떠오르는 인물 누구인가요? 그렇죠. 바로, 장보고 장보고는 이 미천한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요 고대 중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 역사서에 모두 이름을 올린 유일한 사람입니다 와 이거 어떻게 장보고는 자신의 친분을 극복하고 해상왕이라 불리면서 한중일 역사서 이름을 올렸을까요 장보고는 통일 신라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통일신라는요 골품제 사회였죠 골품제는요 왕족인 성골과 진골 그리고 그 아래 6두품에서 1두품까지 여덟 개의 신분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골품제는 정치적인 출세,집의 크기 의복의 색깔까지 규정짓는 아주 엄격한 신분제였죠 자 6두품은 왕족 다음으로 높은 신분이었지만 올라갈 수 있는 관직의 한계가 있었습니다 지배층이었지만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어느 선 이상 승진할 수가 없었던 겁니다 자 이런 상황이니까 평민들의 삶은 어땠겠습니까? 그 평민들 중 한 명이 장보고였습니다 자 그래서요 한·중·일 삼국의 역사서에 모두 등장할 정도로 이름을 떨쳤음에도 불구하고 출생과 부모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삼국유사의 출신이 미천했다 뭐 이 정도의 기록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완도 근처에서 태어난 평민이었을 걸로 추정될 뿐입니다 심지어 장보고는요 이름조차 없었습니다 평민들은 성도 없고 이름도 정식으로 짓지 않잖아요 그냥 어린 시절부터 활을 좀 잘 쏜다고 이제 활보 이렇게 불렸을 뿐입니다 좀 더 자란 후에는 그 활보를 이제 한자로 바꿔 가지고 궁복 이라는 이름을 썼을 뿐입니다 자 그런데 여러분들 이 시기에 평민들은 절대로 꿈을 가져서는 안 됐습니다 왜요? 이유는요 그 시대의 신분은 운명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뭐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럼 농사를 지어야 됐고요 바닷가에서 태어났으면 그럼 고기 잡으면 살아야 해요 그런데 이 미천한 장보고는 그만 장수,장군의 꿈을 갖게 됩니다 골품제 사회였던 신라에서는 절대 이룰 수 없는 불가능한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장보고는 그 꿈을 반드시 이루고 싶었습니다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푸른 바다였습니다 장보고는 기회를 찾아 바다를 건너 중국 당나라로 갑니다 당시 당나라는 이 대제국으로 불리는 나라였는데요 사방으로 이 땅을 넓다 보니까 여기저기서 반란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당나라는 이걸 막기 위해서 이민족 용병을 고용해서 진압하려고 했죠 당나라로 건너간 장보고도 이 용병 모집 광고를 보고 외인부대에 들어갑니다 월급 받은 군인이 된 거죠 장보고란 이름도 이때 만든 겁니다 월급 받으려면 이름을 등록해야 되니까 이름이 필요했겠죠 군 생활에 잘 맞았는지 아 장보고 승승장구합니다 아우 게다가 활도 잘 쏟았습니까 그죠 아 중국 역사서에 그 활약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화를 쏘고 창을 휘두르며 싸우는 장보고의 모습을 마치 영웅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잘한다 잘 보고 연이어 큰 공을 세운 장보고는 무령군 소장이라는 그 자리까지 올라갑니다 가진 것 하나 없이 낯선 땅이 와서 외국인 용병으로 시작해서 장교까지 된 거니까 우와 엄청나게 성공한 거죠 마치 아메리칸 드림의 버금가는 당나라 드림을 이룬 셈입니다 자 그런데요 반란군이 다 진압됐어요 자 이러면 장보고의 일감이 떨어지는 거 아닐까요? 게다가 이게 외국인이잖아요 그러니까 언제 또 해고될지 모르는 그런 위기감이 분명히 있었을 겁니다 고민하던 장보고는 또 어린 시절에 그랬듯이 푸른 바다를 바라봅니다 바다를 향해 가는 무역선을 발견한 장보고는요 그렇다 이거다 해상무역에 뛰어들기로 결심합니다 장보고는 바닷가 출신입니다 누구보다 바다에 대한 이해가 깊습니다 아 그리고요 당나라에 오래 살다 보니까 현지 사정 빠삭합니다 인맥도 많이 쌓았습니다 장보고는 어디에 가야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는지 어느 곳에서 누구와 교역하고, 어디에 팔아야 되는지 그래야 어디서 많은 이윤이 남는지 다 알아요 자 당시의 중국의 동해안 지역에는요 많은 신라인들이 모여 살고 있었습니다 신라방 이라고 해가지고 코리아타운처럼이 신라인들 그 집단 거주 지역이 있었는데요 그들 중에서는요 연안 운송업과 상업에 종사하는 자들이 굉장히 많이 있었습니다 아라비아,페르시아 상인과 교역하는 그런 사람도 있었죠 이뿐만 아니었습니다 당 신라 일본을 오가면서 국제무역에 종사하던 사람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신라 사람들은 신라원이라는 사찰을 통해서 이 정보를 나누고 친분을 쌓고 있었죠 장보고는 바로 이 네트워크를 활용해야겠다 이렇게 판단합니다 자 그러면서 산둥반도의 적산에 법화원이라는 아주 큰 절을 세웁니다 자연히 많은 사람이 이전에 드나들게 되겠죠 예불을 드릴 때면요 한 2~300명이 좋게 모였고요 신라어로 진행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와 신라인들 대단했네요 바로 이 법화원을 통해서 정보를 수집한 장보고 드디어 바다의 무역선을 띄웁니다 결과는? 우와 야 이거 대박이다 어마어마한 돈을 법니다 정말 상상을 초월한 돈을 봅니다 중국에서도 이름이 날릴 정도로 재산이 많았다고 하니까 거의 뭐 중국에서는 이 당시 장보고를 거의 재벌급으로 보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요 장보고를 아예 재물의 신으로 섬길 정도였습니다 군인으로서 능력도 입증되었고 장사를 통해서 재료까지 얻은 이 장보고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그런 사람이 되었죠 자 이 벌어놓은 돈으로 여생을 정말 편안하게 살면 됩니다 뭐가 부럽습니까? 그렇죠? 그런데 이 장보고의 시선은 늘 그랬듯이 다시 푸른 바다를 향합니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만큼 정말 큰 성공을 거두고 바다를 바라보니까 어 이제는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해적들에게 끌려가 노예로 팔리는 신라 사람들이 보였던 것입니다 장보고는 이때 결심합니다 해적을 소탕해서 이 바다의 질서를 내가 장악하겠다 라는 그런 새로운 꿈을 꾸게 됩니다 자 이제 드디어 신라로 돌아갑니다 신라로 돌아온 장보고는 경주 서라벌로 가서 신라의 왕 흥덕왕을 만납니다 우와 왕을 만났다 누가? 장보고가! 대박! 바닷가 마을에 살았던 그 흙수저 중에 흙수저가 해외에서 출세해서 정말 금의환양해서 왕을 만난 거예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거예요 와 이건 정말 한 편의 드라마 아닙니까 드라마 자 이제 장보고는 흥덕왕에게 이렇게 제안합니다 저에게는 경제력도 있고 군사력도 있습니다 저에게 권한을 주신다면 바다에 해적들을 소탕해 보이겠습니다 듬직하다 흥덕왕은 듣자마자 일을 허락합니다 장보고는 이러면서 완도 앞바다에 청해진을 건설합니다 그전까지만만 해도 이 해적들이 들쑥날쑥 난리법석이었거든요 그런데요 이 청해진이 세워진 이후로는 해적들이 난동을 일으켰다는 기록이 거의 없습니다 장보고는 그야말로 바다를 장악한 겁니다 강력한 군사력이 있었고요 무역업으로 돈도 끊임없이 벌었습니다 청해진 일대는 거의 장보고가 다스리는 왕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바다의 신 장보고의 탄생이었습니다 대항해시대 영국의 탐험가 월터 롤리는요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바로 이 시대 바다를 지배한 자가 바다의 신 장보고였습니다 특히 이 청해진을 중심으로 한 중국과 일본 이슬람 세력과의 무역은요 한반도 역사상 전례 없는 해상무역 활동이었습니다 그 결과 정말 세계 최고라는 타이틀이 붙어도 어색하지 않을 무역왕이 된 것입니다 [바다를 향해 탐구하고 도전한 국내 위인들 -바다를 향한 도전 장보고-] [골품제를 시행하던 통일신라 시대 탄생 장군의 꿈을 꾸며 당나라로 건나감(20대 초반)] [당나라 무령군 소장으로 진급(819년) 적산 법화원 건립(823년)] [청해진 건립으로 해적소탕(828년)] 모두가 자신의 신분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던 그런 시대였지만 장보고는 달랐습니다 어려서는 타고난 한계를 뛰어넘고자 바다를 건넜고 나이가 들어서는 바다를 오고 가는 무역업을 통해 단단한 신분제 사회의 벽을 무너뜨리고자 했습니다 물론 장보고는 왕위 쟁탈전에 휩쓸려서 생을 마감하긴 했지만 바다 너머를 상상하고 그것을 건너고자 했던 그의 도전정신은 우리에게 정말 커다란 용기를 줍니다 자 오늘 이렇게 바다에 대한 도전으로 그리고 그에 대한 성공으로 이 장보고에 대해 한번 알아봤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바다에 대한 탐구 이 탐구로 우리나라 최초 수산학 관계서적인 자산어보를 집필한 정약전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지금까지 한국사 길잡이 큰별쌤 최태성이었습니다 자 다음 시간에도 우리 만나요

 학습목차

학습목차표_회차, 회차명, 강의시간으로 이루어짐
회차 회차명 강의시간
1강 바다를 향한 도전, 장보고 11분 17초
2강 바다를 향한 탐구, 정약전 12분 33초

 학습목표

1강) 바다를 향한 도전, 장보고
2강) 바다를 향한 탐구, 정약전